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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 [영문번역>번역서 소개][한글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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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3/19
ㆍ조회: 3583      
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 [영문번역>번역서 소개][한글번역]
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저
배대화 역
동북아역사재단
2013.02.27
원제 Остров Сахалин
페이지 574
 

책소개

체호프는 1890년 4월 21일 모스크바를 출발, 4월 29일 예까쩨린부르크에 도착했다. 그는 시베리아를 횡단한 뒤 7월 11일 사할린섬에 도착했고, 10월 13일 사할린섬을 출발하여 12월 8일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사할린섬 여행 이후 1893년 10월부터 1894년 7월까지 「러시아사상」에 <사할린 섬>을 연재하였다. 1895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는데, 390여 쪽의 현장 보고서였다.

전체 23장으로 구성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제1장부터 3장까지는 체호프의 니꼴라옙스크에서 아무르강 하구까지 여행과정, 사할린 도착 과정, 사할린 유형수의 조사 등이었다. 4장부터 11장까지는 사할린 알렉산드롭스크 지구의 유형수와 농민, 아이누인과 길랴크인의 역사 등이었다. 12장에서 14장까지는 체호프의 남사할린 조사, 러시아의 사할린 영유권 역사 등이었다. 15장에서 23장까지는 사할린 유형수 주민의 구성, 여성문제, 유형수의 가족생활, 유형수의 도덕성과 범죄성 등이었다.

[알라딘 제공]  

목차


역자 서문
해제: 사할린 섬과 갈매기
제1부 시베리아에서
제2부 사할린 섬 - 여행기 중에서
I. 니콜라예프스크, 바이칼 호, 프론게 곶과 리만 시로 하선, 사할린 반도, 라페루즈, 브라우톤, 크루젠쉬테른과
네벨스코이, 일본인 연구자들, 좌오레 곶, 타타르 기슭, 데-카스트리
II. 간략 지리, 북사할린 도착, 화재, 선착장, 마을, L 씨 댁에서 식사, 지인, 코노노비치 장군, 주 총독의 방문,
식사와 조명
III. 조사, 통계 카드의 내용, 내가 물어본 것과 내게 답변한 것, 통나무집과 거주자들, 조사에 관한 유형수들의 의견
IV. 두이카 강, 알렉산드로프스크 분지, 알렉산드로프카 자유촌(슬로보드카), 부랑자 크라시브이,
알렉산드로프스크 진, 진의 과거, 유목민 천막촌, 사할린의 파리
V. 알렉산드로프스크 징역유형교도소, 공동방, 족쇄 찬 죄수들, 황금손, 변소, 도박장(Майдан), 알렉산드로프스크의
강제 노역, 하인, 공방들
VI. 예고르의 이야기
VII. 등대, 코르사코프 마을, P. I. 수프루넨코 박사의 수집품, 기상관측소, 알렉산드로프스크 지구의 기후,
노보미하일로프카 마을, 포킨, 전 형리 테르스키, 크라스느이-야르 마을, 부타코보 마을
VIII. 아르카이 강, 아르코보 초소, 제일·제이·제삼 아르코보 마을, 아르코보 분지, 서쪽 해안 마을들: 므가치, 탄기,
호에, 트람바우스, 비아흐트이, 반기, 툰넬, 케이블 집, 두에, 가족용 감방, 두에 교도소, 탄광, 보예보드스카야
교도소, 외바퀴 수레에 매인 죄수들
IX. 트임 혹은 트이미, 해군 대위 보쉬냐크, 폴랴코프, 베르흐니-아르무단, 니즈니-아르무단, 데르빈스코에 마을,
트이미 산책, 우스코보 마을, 집시들, 타이가 숲 산책, 보스크레센스코에 마을
X. 르이코프스코에 마을, 이곳 교도소, M. N. 갈킨-브라스키 관측소, 팔레보 마을, 미크류코프 마을, 발즈이 마을과
론가리 마을, 말로-트이모보 마을, 안드레예-이바노프스코에 마을
XI. 입안된 지구, 석기시대, 자유식민이 있었는가?, 길랴크 인들, 이들의 인구 구성, 외모, 체격, 음식물, 의복, 주거,
위생환경, 성격, 이들을 러시아화하려는 시도, 오로치 족
XII. 남쪽으로 출발, 쾌활한 부인, 서해안, 해류, 마우카(眞岡), 크릴온, 아니와(亞庭), 코르사코프 진, 새로운 지인,
북동풍, 남사할린의 기후, 코르사코프 교도소, 소방차
XIII. 포로-안-토마리, 무라비요프스크 진, 제1골짜기, 제2골짜기, 제3골짜기, 솔로비요프카 마을, 류토가 마을,
민둥곶 마을, 미쭐카 마을, 낙엽송 마을, 호무토프카 마을, 볼샤야 옐란 마을, 블라디미로프카 마을,
농장 혹은 회사, 루고보예 마을, 오두막신부촌, 자작나무촌, 십자가촌, 볼쇼에 타코에 마을과 말로에 타코에 마을,
갈키노-브라스코에 마을, 떡갈나무촌, 나이부치, 바다
XIV. 타라이카(多來加), 자유민촌, 그들의 실패, 아이누 인, 그 분포도, 인구 구성, 외모, 음식물, 의복, 주거, 풍습,
일본인들, 쿠순-코탄, 일본 영사관
XV. 징역유형수 세대주들, 이주유형수로의 승격, 새 마을들을 위한 장소 선정, 세대경영, 공동소유주들.
농민으로의 승격, 유형수 출신 농민들의 대륙이주, 마을 생활, 교도소 주변, 출생지와 계층별 주민 구성,
마을 권력
XVI. 성별에 의한 유형 주민의 구성, 여성문제, 여성 징역유형수와 여성 이주유형수, 내연의 동거남과 동거녀,
자유신분의 여성
XVII. 연령별 주민 구성, 유형수 가족상황, 결혼, 출산율, 사할린의 아이들
XVIII. 유형수들의 일, 농업, 수렵, 어업, 회귀어종: 연어와 정어리, 교도소의 수렵, 수공업
XIX. 유형수들의 식사, 죄수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 옷, 교회, 학교, 문자해독력
XX. 자유민, 지역 군대의 하사관들, 간수들, 지식인들
XXI. 유형민의 도덕성, 범죄성, 심리(審理)와 재판, 형벌, 매와 채찍, 사형
XXII. 사할린의 탈주자들, 탈주 원인, 출생지별, 소속별 그리고 기타 등에 의한 탈주자들 구성
XXIII. 유형주민의 발병률과 사망률, 의료기관, 알렉산드로프스크 병원
Endnotes
저자와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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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 소개
 
저자 :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최근작 : <중학생이 보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 총 357종
소개 :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1860년 러시아 타칸로크에서 태어났으며, 모스크바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재학중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단편소설들을 쓰기 시작했으며, 졸업 후 의사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에 나섰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요양 중 병이 악화되어 1904년 44세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

1880년대 전반 몇 년 동안에 <관리의 죽음>, <카멜레온>, <하사관 프리시베예프>, <슬픔> 등과 같은 풍자와 유머와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겼다. 그후 <황야>...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1860년 러시아 타칸로크에서 태어났으며, 모스크바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재학중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단편소설들을 쓰기 시작했으며, 졸업 후 의사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에 나섰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요양 중 병이 악화되어 1904년 44세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

1880년대 전반 몇 년 동안에 <관리의 죽음>, <카멜레온>, <하사관 프리시베예프>, <슬픔> 등과 같은 풍자와 유머와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겼다. 그후 <황야>, <지루한 이야기>, <등불>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혔고, 30세 때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기점으로 사회 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다루며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근대연극에서 기분극(氣分劇)의 창시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희곡으로는 <이바노프>(1887), <갈매기>(1896), <바냐 아저씨>(1897), <세 자매>(1901), <벚꽃동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은 러시아 근대 리얼리즘을 완성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88년에는 단편 소설집 <황혼>(1887)으로 푸쉬킨 상을 수상했다. 
 
역자 : 배대화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경남대학교 노어문학과 교수를 거쳐 2013년 현재 동 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논저로 『오이디푸스와 서사 : 안드레이 벨르이의 소설 『빼쩨르부르그』 연구』(1999), 「백석의 푸시킨 번역시 연구」(2012), 「메타 텍스트로서 푸시킨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와 “석상 손님”」(2003)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체호프는 1890년 4월 21일 모스크바를 출발, 4월 29일 예까쩨린부르크에 도착했다. 그는 시베리아를 횡단한 뒤 7월 11일 사할린섬에 도착했다. 체호프는 10월 13일 사할린섬을 출발하여 12월 8일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체호프는 사할린섬 여행 이후 1893년 10월부터 1894년 7월까지 '러시아사상'(Русская мысль)에 <사할린 섬>을 연재하였다. 1895년 <사할린 섬>은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사할린 섬>은 390여 쪽의 현장 보고서였고, 전체 23장으로 구성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제1장부터 3장까지는 체호프의 니꼴라옙스크에서 아무르강 하구까지 여행과정, 사할린 도착 과정, 사할린 유형수(流刑囚)의 조사 등이었다. 4장부터 11장까지는 사할린 알렉산드롭스크 지구의 유형수와 농민, 아이누인과 길랴크인의 역사 등이었다. 12장에서 14장까지는 체호프의 남사할린 조사, 러시아의 사할린 영유권 역사 등이었다. 15장에서 23장까지는 사할린 유형수 주민의 구성, 여성문제, 유형수의 가족생활, 유형수의 도덕성과 범죄성 등이었다.


□ 학술적 가치
1) 체호프, 그의 정신세계 비밀
체호프는 정신세계의 비밀을 찾으려 현실을 파고든 러시아 대문호였다. 체호프는 후대 비평가에게 기이함, 호기심 등의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중 ‘체호프의 수수께끼’라는 표현은 그의 문학작품의 해석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동안 문학과 연극 등에서 체호프 작품에 대한 해석이 진행되었다. 황혼을 노래한 작가 또는 미래를 꿈꾸는 작가로 해석이 달랐다. 또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 또는 제정러시아 몰락 이후 희망의 작가로 엇갈렸다. 러시아 문학가 추다꼬프(А.П. Чудаков)는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 곧 희극과 비극이 결합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연극연구자 듀크스(A. Dukes)는 체호프의 희곡을 자연주의로 이해했다. 스타이언(J.L. Styan)은 사실주의로 그의 연극을 수용했다. 하우저(A.G. Hauser)는 체호프 희곡을 인상주의 관점으로 포착했다. 러시아 연극연구자 중 일부는 체호프와 그의 희곡을 사실주의적인 관점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들은 체호프를 그의 소설 작품에만 기초해서 분석했기 때문이었다. 체호프의 작가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90년 사할린 섬 여행 이후 그가 남긴 현장 보고서 <사할린 섬>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2) 체호프, 문헌수집 및 현장조사에 기초한『사할린 섬』완성
체호프는 사할린 섬을 방문 전후한 문헌수집 및 현장조사를 토대로 4년 만에『사할린 섬』을 완성하였다.
『사할린 섬』을 최초로 국내에 번역한 배대화(경남대 교수)에 따르면 “체호프는 사할린섬 여행 이전에 러시아형법, 금고와 유형, 사할린 관련 자료 등을 조사했다. 그는 중앙형무소 당국의 보고서, 통계문헌과 해양선집 등을 연구했다. 체호프는 여행 기간 중 저녁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여행관련 기록도 정리했다. 체호프는 유형수의 삶을 조사하기 위해서 마을마다 모든 집을 돌아다니려고 노력했다. 체호프는 집주인 부부, 가족, 동거인, 일꾼 등을 직접 기록했다. 체호프는 사할린섬을 작성하기 위해 다양한 참고문헌을 조사했다. 참고문헌을 살펴보면 체호프는 사할린 섬에 대한 학술지, 즉 광산저널, 해양총서, 역사통보 등의 다양한 문헌을 활용했다.”

3) 러시아와 일본, 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 영유권 문제
체호프는 러시아와 일본의 남사할린 영유권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체호프에 따르면 일본은 1613년부터 처음으로 사할린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측량기사 마미야 린조(Мамиа Ринзо, 間宮林藏)는 1808년에 사할린 서쪽 해안을 따라 여행했고, 처음으로 사할린이 섬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체호프는 일본인의 남사할린 주요 이권이 어업이었다고 판단했다. 체호프는 기사 로빠찐(Лопатин)의 말을 인용하였다. “일본인은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거나 겨울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한다. 남사할린에 오는 일본인은 단지 어업에 종사하여 야영 생활을 했고, 겨울철 최소한의 인원만 남긴 채 일본에 귀국했다. 일본인은 채소밭을 가꾸지 않았으며 가축도 키우지 않았다. 생활필수품을 전부 일본에서 가져왔다. 일본어민을 매료시킨 것은 단 하나 물고기였다.”
체호프는 남사할린의 포유류 중 강치를 주목했다. 체호프에 따르면 사할린의 해안 가까이 바다 위로 암벽이 홀로 솟아 있는데 “위험한 바위(Камнем Опасности)”로 불렸다. 한 목격자는 범선 예르마크(Ермак)를 타고 이 바위를 탐사하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바위까지 아직 2.4미터나 남았다. 그런데 바위는 커다란 강치들로 빽빽하게 덮여 있었다. 이 무수한 야생의 무리들의 울음소리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 짐승들은 전설처럼 커서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바위처럼 보였다. 강치의 크기는 약 4미터 정도 혹은 더 컸다.”
이러한 사실은 강치가 19세기 후반 동해의 독도인근 해역뿐만 아니라 사할린 섬 해역에도 넓게 분포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체홉은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분포한 아이누인도 주목하였다. 아이누인은 홋카이도의 마쓰마이(松前) 섬부터 남사할린의 쩨르뻬니예(Терпение) 만까지 거주했다. 체홉에 따르면 러시아인은 아이누인을 쿠릴인이라고 불렀다. 체홉은 아이누인이 “온순하고 순종적이며 쌀 없이는 살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체홉에 따르면 아이누인은 러시아의 남사할린 점령 전까지 일본인의 농노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1875년 러시아와 일본은 남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양국의 경계로 확정하는 뻬쩨르부르크조약을 체결했다. 체홉은 러시아가 쿠릴열도(Курильские островы) 전부를 일본에 넘겨준 것을 비판했다. 체홉은 쿠릴열도의 양도 때문에 “일본에게 매년 100만 루블의 소득을 넘겨주었다”며 쿠릴열도의 경제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체호프는 일본인이 사할린을 최초로 탐험했고 처음으로 남사할린을 점령한 것을 인정했다. 해제를 작성한 동북아역사재단 김영수 연구위원에 따르면 체호프는 사할린의 발견에 대해서 러시아보다 일본이 앞섰다고 기록했지만, 실제 러시아는 이미 17~18세기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정보를 갖고 있었다. 김영수 연구위원에 따르면 “1700년 지리학자이자 역사가인 레메조프(С.У. Ремезов)는 자신의 시베리아 지도에 쿠릴열도를 표시했다. 1779년 4월 30일 예까쩨리나 2세는 ?어떤 세금도 내지 않는 러시아의 신민이 된 쿠릴열도 주민?에 대한 포고령을 발표했다.”

4) 1880년 전후, 한국인의 사할린 최초 거주
체홉은 남사할린에 1880년 전후 한국인 노동자가 상당수 거주했다고 기록했다. 이것은 근대 시기 사할린 거주 한국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체호프는 남사할린 꼬르사꼬프 지구 마우까(Маука 현재 홀름스크시)의 다시마(해조류) 채취 사업에 한국인 노동자를 주목했다.
“마우까는 두에 남쪽으로 450킬로미터 지점 북위 47도에 위치하며, 상대적으로 좋은 기후를 갖고 있었다. 러시아 상인 세묘노프(Семенов)가 다시마사업을 소유하였고, 스코틀랜드인 덴비(Демби)가 다시마사업을 관리하였다. 세묘노프는 다시마 채취사업에 한국인(корейцы), 만주인(Манзы), 러시아인을 고용하였다. 1886년부터 러시아 이주유형수가 개인적인 영리추구를 위해서 마우까에 진출하였다. 마우까에는 유태인 3명, 러시아군인 7명, 한국인(Корейцев), 아이누족(Айно), 중국인(китайцев)으로 구성된 700명의 노동자가 거주하였다.”

5) 체호프가 사할린을 방문한 이유
그런데 왜 체호프는 왜 시베리아와 사할린섬을 방문했을까?
시베리아와 사할린 여행은 체호프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체호프는 1892년 3월 모스크바 남쪽에 인접한 멜리호보(Мелихово)에 정착했다. 그는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체호프는 콜레라가 유행할 때 의사로서 일했고, 굶주린 농민을 구제했고, 학교 건립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체호프는 여행 중 자신의 인상을 담은 ‘구세프(Гусев, 사람 이름)’를 집필했다. 그밖에 ‘6호실(Палата No.6)’, ‘유형지에서(В ссылке)’, ‘살인(Убийство)’, ‘공포(Страх)’ 등이 있었다. 이 작품들의 핵심은 힘과 위선에 대한 투쟁과 단순함이었다. 체호프는 일부 관련 작품을 제외하고 사할린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아, 모든 것이 사할린에 대한 것이 되어버렸소.”
체호프는 ‘위안’을 얻으려고 시베리아와 사할린 여행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다. 그 위안은 잠시 시베리아라는 이국적인 자연에서 자신의 현실적 고민들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 사회에서 사할린섬의 필요성에 대한 체호프의 고민이었다. 체호프는 러시아 식민지의 모습 및 유형수에 대해 관찰했다. 여기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체호프의 결정이었다.
체호프 소설의 전환은 사할린 섬이었다. 체호프는 1890년 시베리아와 사할린섬 여행 이후 인간본질에 대해 고민했다. 체호프는 권력에 의한 우연성이 인간의 삶을 철저히 굴복시키는 상황을 주목했다. 체호프는 작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체호프는 사할린 여행 이후 작가가 민중의 삶에 기초해야한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현실의 삶은 체호프에게 무거웠다.
체호프는 <사할린 섬>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은 현실의 삶과 꿈꾸는 삶의 이중성으로 고통 받는다. 작가는 현실의 삶과 꿈꾸는 삶의 이중성을 동시에 투영해야 한다...”라고.

작성일 : 2013년 2월 20일
작성자 :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김 영 수

 
관련 기사
 
[천지일보=고하늘 기자]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이 안톤 체호프 원작의 ‘사할린 섬’을 번역, 발간했다.
 
‘사할린 섬’은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가 1890년 시베리아와 사할린 섬을 여행한 후 소설책이 아닌 현장 보고서로 남긴 책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을 통해 국내 최초로 번역된 ‘사할린 섬’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와 일본의 사할린과 쿠릴열도(일본에서 말하는 북방 4개 도서)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를 상세히 기록했다.
 
책은 총 23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 3장은 체호프의 니꼴라옙스크에서 아무르 강 하구까지 여행과정, 사할린 도착 과정, 사할린 유형수의 조사 등의 내용이 담겼다.
 
4장에서 11장은 사할린 알렉산드롭스크 지구의 유형수와 농민, 아이누인과 길랴크인의 역사를, 12장에서 14장은 체호프의 남사할린 조사, 러시아의 사할린 영유권 역사 등이 기록됐다.
 
15장에서 23장은 사할린 유형수 주민의 구성, 여성문제, 유형수의 가족생활, 유형수의 도덕성과 범죄성 등을 다뤘다.
 
특히 1880년 전후 한국인이 사할린에 최초 거주한 사실이 눈에 띈다. 체호프는 1880년 전후시기 남사할린에 한국인 노동자가 상당수 거주했다고 기록했다.
 
번역서 ‘사할린 섬’은 치밀한 문헌수집 및 현장조사에 기초해 4년 만에 완성됐다. 체호프의 정신세계의 비밀,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 영유권 문제 등을 살필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동북아역사재단 김학준 이사장은 “이번에 발간하는 ‘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은 근대 러시아 작가의 극동탐사 관련 3대 저작의 한 권으로 꼽히는 주요 저작을 국내 최초로 번역, 발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72786)


출처 : http://book.naver.com/product/go.nhn?cpName=aladdin&url=http%3A%2F%2Fwww.aladin.co.kr%2Fshop%2Fwproduct.aspx%3Fpartner%3Dnaver_02%26ISBN%3D8961872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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