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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장 쉬운 번역은 자기소개서이고 가장 어려운 번역은 계약서라고 한다. 인터넷에 있는 번역회사 홈페이지를 클릭해 보면 자기소개서에는 거의 요율이 없는 반면 계약서에는 상당한 요율을 부가한다. 더더군다나 번역사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계약서 번역 가능 여부를 들곤 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번역의 난이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언제나 자기 소개서가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자기 소개서 번역이 왜 어려워요?” 자기 소개서는 마치 한 편의 소설과 같다. 개인의 성장배경, 삶의 철학, 인생목표 등 한 사람의 개인사가 압축되어 농축된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 때로는 한 사람의 감정이 절절하게 들어 있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그냥 언제 태어나서, 어디서 자랐고, 어떤 것을 하고 싶다 하는 식의 단순한 글이 아니다. 자신의 성장배경을 바탕으로 지원하는 학교나 직장에 자신이 왜 필요한 지를 설득하는 글이다. 내가 볼 때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소설보다 더 어려운 번역이 아닌가 한다. 경우에 따라서, 개인적인 정서와 감성이 들어 있기 때문에, 글쓴이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고가 필요하며, 글쓴이와 일심동체가 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 번역을 할 수 없다. 반대로 계약서는 정해진 형식과 절차에 따라 작성하는 것이다. 비록 한 문장이 열 줄 이상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계약서는 그 내용 중 절반 이상이 다른 계약서와 거의 같은 글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표현을 습득만 한다면 정말 놀라운 속도로 번역할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이민 관련 회사에 근무했던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 회사 사장은 영어 회화는 곧잘 했지만 영작 실력은 그리 능숙하지 못했다 한다. 하지만 이민 관계 계약서를 거의 10년 이상 보아왔기 때문에, 영문 이민서류(계약서)를 보기만 하면 무조건반사로 거침없이 한국어 번역문이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계약서는 정해진 형식에 변화가 거의 없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외국 유학 경험이 없는 번역 지망생을 만날 때마다 나는 영문 계약서 번역을 권한다. 더구나 현재 번역 시장에서 영한 번역은 주로 논문이나 계약서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도 계약서 번역은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영문 계약서를 터득하게 되면 계약서의 한영 번역도 자연스럽게 쉬워진다. 만일 당신이 번역사에 뜻이 있다면 계약서 번역에 도전하기를 바란다. 남이 보기에 어려운 길은, 본인 노력의 여하에 따라 정말로 쉬운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누구나 쉽다고 믿는 길은 경우에 따라서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