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뢰자: 제 미국인 친구가 번역물을 감수했는데 문제가 많다고 했습니다. 번역회사: 네? 의뢰자: 그 친구가 보기에 이상한 표현이 많다고 하네요. 번역회사: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저희 번역회사에 실력이 있는 분이 번역을 하셨는데... 의뢰자: 아무튼 재번역 해주세요. 우리는 흔히 영어를 잘하면 번역을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더더군다나 미국인이 감수를 한 것에는 절대적인 신뢰를 부여한다. 번역이란 원문과 번역문에 해당하는 양쪽 언어를 모두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한국어를 모르는 미국인이 어떻게 활자화된 영어 표현만 보고 감수를 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거의 40여 년간 영어 속에 파묻혀 살아왔다. 영어에 관한 한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예를 들어 모 출판사에서 영어 원고를 교정하고 편집하여 출판한 적도 있다. 저자는 미국에 계시는 상당히 알려진 분이다. 그분의 원고 내용은 훌륭하지만 편집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제대로 읽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필자가 의견을 내어 편집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미국에 계시는 저자는 한국에 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후배와 의논하라는 연락을 보냈다. 호주에서 지도 교수로부터 혹독하게 배운 가르침에 따라 편집물을 교수님께 보내드렸다. 대답은 엄청난 것이었다. 엉망이라고. 당신은 영어로 책을 수십 권 저술했다고. 그러나 나의 편집물과 그에 대한 사유서를 미국에 있는 저자에게 보낸 결과, 저자는 하룻밤 만에 나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고 교정한 원고를 보냈다. 이후의 일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번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번역사의 질이 엉망이니까, 번역물이 엉망이지.” “아니야, 번역 단가가 낮으니까, 어쩔 수 없이 번역의 질이 떨어지지.” 여러분,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똑같다. 번역 시장을 보자. 저가 경쟁으로 인해 이미 난이도에 의한 요율은 사라진 지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번역사들은 생계를 위해 10여 년 전의 번역료를 받으면서 거의 밤을 새다시피 번역을 하고 있다. 더더군다나 의뢰하는 한국어 원문이 정돈되지 않은 악문인 경우도 많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이중고를 번역사는 감당해야 한다. 많은 번역사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도대체 한국어 원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번역보다도 원문을 파악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원문을 쓴 사람의 글을 이해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심리학 연구의 수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번역사에게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전부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번역사들이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거주한 경력을 이용해 번역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문제는 한국어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예로 조선시대 논문의 초록에서 “조선 통신사”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 번역사는 “Joseon News Agency”라고 번역을 했다. 아마도 통신사 (News Agency)라는 단어로 인해 조선이라는 통신사의 이름이 아닌가 생각하여 번역한 모양이다. 그래서 해당 번역사에게 그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그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사에서 “조선통신사”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다. 허나 예로 든 번역사는 그저 빠른 시간 안에 번역을 하고 번역료를 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일도 비일비재하다. 번역사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번역으로 큰돈을 벌 생각이면 포기하세요. 그러나 영어를 좋아하고 번역을 좋아한다면 번역을 하세요. 완성도가 있다면 대기업만은 못하더라도 중소기업에서 받는 월급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물은 그림과 같이, 한 장에 8천원에서 10만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것은 번역사의 인지도와 번역물의 수준에 근거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문화 차이로 인해 영어권에 없는 한국식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생소한 영어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어를 모르는 미국인이 과연 이러한 고충을 알 수 있겠는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는 표현이라는 이유로 빨간 줄을 긋기만 할 뿐이다. 감수란 한국어와 영어를 심도 있게 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는 것이며, 영어에 없는 개념을 새롭게 창출할 때 번역문화가 살아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