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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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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3647      
한국 문학의 세계화, 창조적 사고에서 출발해야[기사<번역뉴스][빠른번역]
 망백(望百)의 노학자 기촌(耆村) 여석기(91·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 고려대 명예교수. 그는 21세기 한국 영문학 및 연극평론계의 살아있는 신화다. 1997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여석기 연극평론상’을 제정했는데 이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이다. 그가 태어난 1922년 국내에 처음으로 셰익스피어 번역서가 출판됐다. 한국에서의 셰익스피어 도입에 대해 “나하고 동갑”이라고 말하는 그는 운명적인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셈이다.
 
연극평론가 유민영은 여 명예교수에 대해 “비평을 연극의 한 장르로 격상시킨 영미 연극 석학”이라고 했다. 종합지 편집위원, 영화 평론가, 각종 문화예술 부문 심사위원, 문화부문 행정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연극전문지 ‘연극평론’의 창립자, 1960년대를 풍미한 종합잡지 ‘사상계’의 편집위원이기도 했다. 1970년에 주재한 잡지 ‘연극평론’은 한국 연극평론의 개척자이자 평론을 새롭게 정립한 선구매체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금은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으로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에 진력하고 있다. 지금도 매주 3일간 종로에 있는 국제교류진흥회 사무실로 출근한다. 꼿꼿한 허리,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형형한 눈빛, 힘찬 발걸음은 그의 나이를 잊게 만든다.
 
지금도 아마존 킨들로 외국에서 전자 서적을 주문하고, 선댄스 TV 채널을 통해 최신 독립영화를 섭렵한다. 예사로운 질문에도 섬세하고 균형 잡힌 답을 들려주는 여 명예교수에게서 평생 천착해온 햄릿의 면모가 느껴진다. 최근 격조 높은 회고록 ‘여석기 나의 삶, 나의 학문, 나의 연극’을 내놓은 여 명예교수를 20일 서울 종로의 국제교류진흥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스스로를 ‘영문학’이라는 학문의 틀 안에만 가두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2010년 7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1Q84’가 나왔을 때도, 일본어판으로 주문해서 가장 먼저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킨들로 한 1만7000∼1만8000원 정도면 해외에서 나온 책들을 곧바로 다운받아 볼 수 있어요. 킨들을 쓴지는 한 3년 됐습니다. 그런데 1Q84는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 해외코너에서 책이 나오기 전 미리 일본에 주문했어요. 이 책이 일본에서 출판된 날로부터 꼭 1주일 뒤 받아볼 수 있었지요. 그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난 안 좋아하는데, 달콤한 소설로 인기는 제일 많았습니다. 대형서점 무라카미 책만 있는 곳에서 그의 책들을 조금씩 사봤는데 ‘해변의 카프카’가 재미있더군요.”
 
―셰익스피어 극의 전설적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를 직접 만나셨지요.
 
“1971년 영국에서 피터 브룩의 ‘한여름밤의 꿈’을 봤는데, 그 당시 로렌스 올리비에를 극장에서 직접 만났지요. 한국에서 그를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가 나오니까 분위기가 달라지더군요. 존재감과 아우라라고 할까, 배우의 향기가 느껴졌죠.”
 
―셰익스피어 영화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시는 작품은 어떤 것입니까.
 
“1971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 셰익스피어 학회’에서 소련의 영화작가 코진체프의 리어왕을 봤어요. 그는 소련의 반체제 감독이었죠. 밴쿠버에 500명의 셰익스피어 학자들이 모였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전부가 기립박수를 보냈어요. 자막도 안들어간 작품이었는데 그랬다니 대단하죠. 그도 그럴 것이 노벨상 작가인 파스테르나크의 번역과 거장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얻어 만들어진 139분짜리 서사시적 대작입니다. 문화라는 게 보편성을 지니면서도 각 나라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거든요. 언어를 가지고는 영국 쪽과 승부가 안되니까 다른 쪽으로 간 거죠. 코진체프의 영화는 영국에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지요.”
 
―셰익스피어 평론가 중에서 기억할 만한 사람이 있으시다면.
 
“폴란드의 얀 코트가 ‘동시대인 셰익스피어’라는 책을 썼는데, 셰익스피어 작품 7개를 모두 정치적 측면에서 분석했지요. 1960년대 동유럽 사람들은 소련의 독재에 치여 상처가 많았거든요. 얀 코트가 그 출구를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찾은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어느 나라에서도 살 수 있으며 그게 좋은 작품이 갖는 미덕입니다. 괴테 시대 독일 사람들은 ‘우리 셰익스피어’라고 했어요. 러시아 시대 작가 투르게네프도 햄릿을 깊이 있게 연구했죠.”
 
―‘해방학문 1세대’로 평생을 영문학에 매진해오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평론으로 한국 연극을 성숙게 하는데 기여해오셨습니다. 연극과 인연을 맺으신 때는 언제인가요.
 
“동랑 유치진 선생의 드라마센터가 1960년대 초 서울 남산에 모습을 드러냈어요.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작이 ‘햄릿’이었지요. 당시 유치진 선생이 햄릿의 새 번역을 부탁했고, 연극과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드라마센터 개관 6개월도 안 남은 기간이었죠. 대학 강의 때문에 방학기간 밖에 짬을 낼 수 없었는데, 다행히 그해 겨울 방학이 완전히 비어있었어요. 동랑 선생 일생 중 가장 바빴던 이 기간, 그는 아마 가장 행복감에 젖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원 적자라는 말이 있듯이 이 작품은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는데도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 연극제 개최의 주축으로 영문학과 연극을 결집시키셨는데, 당시 셰익스피어 학회 창립과 맞물려있었지요.
 
“1963년에 한국셰익스피어 학회를 창립했는데 당시 명칭은 학회가 아닌 협회였어요. 대학관계자뿐 아니라 현장 연극인도 참여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 다음해(1964년)가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이었거든요. 셰익스피어 축전이 대대적으로 치러졌을 때 많은 연극인과 극단이 참여했는데, 그것이 끝나고 난 뒤 그쪽과 관계가 소원해졌고, 결국 다시 학회로 낙찰되고 말았지요.”
 
―드라마센터 개관 이후 아카데미 원장을 맡으셨지요. 극작워크숍을 통해 윤대성, 오태석, 이강백 등 기라성 같은 극작가를 키워내셨는데 어떻게 지도하셨는지요.
 
“나는 촉매역할을 했을 뿐이에요. 다만 1970년대 한국연극이 비로서 현대연극으로 자립했다고 봐요. 1930년대 극예술연구회 등이 신극을 주도했는데 그게 벅찼고, 1950년대에는 신협이 대표주자였죠. 1960년대 들어서 대학에서 서클활동을 한다든지 동인제 극단이 잇따라 창단됐지요. 그 사람들이 왜 연극을 해야 하느냐 고민하기 시작했고, 실험도 시도했어요. 1970년대에는 한국연극이 전통연희에 대해 관심을 갖는 등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한국연극의 거장’ 오태석의 작품 ‘초분’은 혁신인 작품이었지요.
 
“1973년에 오태석의 초분을 보고 ‘성공한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가 자기가 전달하고 싶은 것을 완벽하게 전달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고 봐요. 하지만 오태석이 자기주장이 들어있는 작품을 내놨고, 연출을 맡은 유덕형은 이 작품에서 한국연극에서 처음 보는 연출의 묘미를 유감없이 보여줬어요. 한국연극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창조적 시도를 거기에서 보여줬습니다. 이때쯤에 한국연극은 진정한 현대에 들어서게 됐고, 이 공연은 하나의 이정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회고록’을 보니 해방 직후 한국 영문학계의 대표 인물로 이양하, 최재서, 이인수, 김동석을 꼽으셨는데, 학자들의 운명이 기구했지요.
 
“해방이 되고 70년이 됐는데 이런 것을 평가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내가 영문학계에서 기억하는 네 분 중 한 사람은 친일파로 낙인찍혔고, 다른 분은 부역이라는 고통스러운 죄목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고, 또 다른 분은 민족분단의 저쪽 편에 서다가 북한으로 떠난 뒤 인민의 이름 아래 처형을 당했지요.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 영문학 발전을 위해 소중한 인재들이었으나 저마다 상처를 안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지요. 해방 공간에서의 학문형성에 대해 역사학자는 관심이 없고 문학인들은 잘 모르지요. 자꾸 자료가 없어지는데 해방공간 때의 지성사를 제대로 다시 써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 역사를 정확히 모르고는 미래를 열어가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 역사학자들의 관점이 넓어진 것 같지 않아요. 주류 역사학도 좌우로 딱 나뉘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햄릿과의 여행, 리어와의 만남’이라는 책에서 햄릿에서는 ‘나머지는 침묵’이라는 대사가 중요하다고 보셨고, 리어왕은 ‘무(無)와 바보스러움, 광기’ 등으로 푸셨는데, 최대 문제작 햄릿은 해외에 어떻게 수용됐나요.
 
“햄릿은 명문구 투성이에요. 햄릿이 ‘나머지는 침묵이다’라고 했지요. 셰익스피어는 말로 먹고 산 사람이에요. 그걸 번역하면 의미가 없어진다는 걸 자꾸 느끼게 됩니다. 셰익스피어는 언어의 마술사 혹은 연금술사라고 해요. 누가 쓴 글을 보니 햄릿이 원작 그대로 공연해서 성공한 경우가 없다고 했어요. 1980년대쯤 젊은 연출자가 나와서 햄릿의 텍스트 자체를 해체해버렸어요. 미국에서도 실험적 시도가 있었지요. 오태석이 템페스트를 신라시대 얘기로 고쳤는데 이게 영국까지 가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냐. 안하냐’고 판단하기보다 그냥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이 의외로 성과는 더딘 편인데요.
 
“시간이 걸리는 문제입니다. 정보기술이나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해도 그걸 움직이는 사람은 창조적 사고를 해야 합니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죠. 현지의 일반 출판사가 뛰어들어야 해요. 미국 편집자들은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작가를 발굴하는 데 이들이 끼어야 하죠. 이걸 깨닫게 된 게 4∼5년밖에 안됐어요.”
 
―국제교류진흥회가 미국 대학가에 한국문학에 관한 잡지를 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월의 진달래꽃을 좋아하는 하버드대 교수 데이비드 매켄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 교수에게 재단에서 기금을 줬어요. 처음에 어떻게 한국문학 전문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했는데 창간할 수 있었어요. 이게 큰 히트는 아니지만 나름 성공했어요. 첫째 이유는 동 시대 젊은 작가를 소개하니까 미국학생들 감각과 잘 맞아떨어졌죠. 지난해 가을에 미국에서 나온 ‘아젤리아(진달래)’ 잡지에는 김애란 특집이 소개됐지요. 물론 대학사회에 국한된 잡지지만 이게 통했어요. 듣기로 일부 상업출판사도 이 잡지 출판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해요. 중국이나 일본문학이 이런 식으로 잡지로 나오는 것이 있느냐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까 없다고 해요. 한국문학잡지의 반향이 좋은 이유죠.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는 아이디어가 중요해요.”
 
―한국문학 해외 번역에 대한 지원이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온 사람들이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국문학 전파도 했지요. 한국문학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미국 여러 대학에 있지만 학과로 독립돼 있는 것은 2∼3개도 안되지요. 그래서 국제교류진흥회에서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 기금을 냈고 거기에 한국 문학과를 만들었죠.”
 
―대기업들의 지원은 어떤가요.
 
“대기업그룹이 아직 문화를 지원하는 데 인색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돈이 많은 미국에서는 안 그렇죠. 록펠러, 카네기, 포드 등 이런 기업들이 부를 세습은 하지만 경영에서는 떠납니다. 그 후계자들이 부를 어느 정도 문화사업에 써요. 우리 대기업은 아직 거기까지는 문명화되지 못했어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요즘 연극은 어떻게 보십니까.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요.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그러더라구요. ‘선생님 요즘 고객층에게는 감동이나 감격 같은 옛 문구가 안 통하는데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라는 겁니다. 재미가 우선이라는 거예요.”
 
―한국영어영문학과 창설 7인 멤버 중 한 분이신데, 내년이면 60주년이 되지 않습니까.
 
“흔히 한국에서 영어학을 해서 무슨 세계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하지요. 요즘에는 정부에서 어느 분야를 지원할 때도 해외 저널에서 얼마나 인용하느냐 물량화해서 따지거든요. 한국의 영어영문학이 최근 5∼6년 새 굉장히 발전했어요. 외국 1급 저널에서 한국영어영문학회의 영어영문학 연구의 논문을 인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이제 영문과 안에서 영화와 대중문화도 다루는 등 영역이 넓어져 가고 있습니다. 철학, 윤리학, 논리학 등이 뒤섞이면서 학문이 변화, 진화, 통섭의 경향을 보이고 있어요. 이것은 좋은 현상이지요. 순수 문학만 고집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독자가 없어져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독자는 없어지고 저자와 연구자만 남게 될 것입니다.”
 
―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으셨고, 1960년대 대표잡지 ‘사상계 편집위원’ 및 동인문학상 심사위원, 고려대 대학원장 등을 맡으시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셨지요. 그 많은 일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1960년대부터 영화관계 심사위원을 했는데, 영화 쪽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대학에서는 교무처장, 교양학부장, 문과대학장, 대학원장 등의 보직을 맡았는데 총장만 다섯분을 모셨지요. 총장을 보좌하는 역을 가장 많이 맡은 사람 중 한 명일 것입니다. 제가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은 한 번도 없었지요. 하지만 맡으라면 다 맡았고, 사양하는 법은 없었어요. 제법 열심히 맡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비결은 될 수 있는 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늘 거리를 두고 처신을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불가근불가원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살았습니다.”
 
―종합지 ‘사상계’에서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도 맡으셨는데, 당시 작가 김승옥이 이 문학상을 받았지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은 문단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었는데, 나는 사상계 편집위원이었기 때문에 말석으로 심사위원에 끼었어요. 1964년에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동인문학상 최종후보로 올랐어요. 일부 선배 심사위원들이 ‘아직 젊으니까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해서 상을 놓치고 말았지요. 김승옥 씨가 그 다음해에 다른 작품으로 동인문학상을 받기는 했지만 1964년 당시에도 상을 준다면 ‘무진기행’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어요. 문체의 감수성부터 기존의 한국소설과 전혀 달랐는데, 그 작품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여 명예교수는 자신이 쓴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나의 햄릿 강의’를 꼽았다. 70여 년간 셰익스피어를 부여안고 살아온 노학자가 텍스트의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쉽고도 명확한 문체로 햄릿의 세계를 보여준 대중적 책이었다. 그러면서도 셰익스피어에 대한 학문적 담론의 예각을 둔화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탁월하게 입증한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는 이 책에서 ‘햄릿’은 작품 속에서 인간적 성장을 한다고 썼다. 여 명예교수에게서도 노년에까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변화하며, 깨닫는 노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출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3220107293002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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