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필자가 대학에 들어와 논문이란 것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 들었던 말은 서론, 본론, 결론의 3단 구성이다. 어느 순간인가 필자는 3단 구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왜 글을 쓸 때는 3단 구성법에 따라야 하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박사과정에 들어가서야 찾게 되었다. 굳이 3단 구성을 따를 필요는 없다. 이것이 진리인 것도 아니며, “기승전결”이라는 다른 방식도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착된 이 방식은 나름대로 독자에게 저자의 주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단순한 구조로 보이지만, 실은 여기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가령 여기에 텔레비전이라는 물체가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먼저 이 물체의 이름을 알려 주어야 한다. 다음에 텔레비전의 목적과 사용방법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의 효과와 그 해악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이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나름대로 예측을 할 것이다. 다시 논문으로 돌아가자. 논문의 저자는 수많은 연구 과제 중에 왜 자신이 해당 주제를 선택했는가를 독자에게 말해야 한다. 혹자는 그럴지도 모른다.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기 위에 이 논문을 썼습니다.”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이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동기부여나 논문 집필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논문 집필의 진정한 동기나 목적이 될 수 없다. 연구자 자신이 해당 논문을 쓰게 된 중요한 계기를 쓰지 않는 이상, 독자는 논문에 대한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않는다. 필자도 서론에서 뚜렷한 동기 부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논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논문의 내용 전개에 그리 큰 기대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동기 부여를 피력한 후, 연구 목적을 밝히고 연구 방법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술한 후 서론을 마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연구자는 독자에게 해당 논문의 윤곽을 제시하여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본론은 연구자가 자신의 가설이나 이론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부분이다. 모든 논문에는 약점이 있다. 모든 연구자의 연구 결과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의 약점과 단점이 보완되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비판이 아니라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비판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어떤 연구 결과가 비판을 받는다면, 그 자체로 그 연구는 값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연구는 생명력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필자는 박사논문을 쓰면서 주로 이론에 중점을 두고 여러 이론을 연구했다. 비록 어떤 이론이 필자의 의견에 반대된다고 하더라도, 필자는 그 이론을 주창한 학자를 존경한다. 그 이유는 그러한 선배들의 연구가 없었다면 내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나는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약점을 발견하는 것은,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감정이 없는 건설적인 비판이다. 끝으로, 결론에서는 이제까지 진술한 내용의 요약과 더불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집약하는 하나의 문장으로 논문을 끝맺는다. 결론적으로, 논문이라는 것은 하나의 질문에 대해 하나의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답이 틀릴 수도 있다. 논문은 경전도 아니며 진리도 아니다. 이것은 연구자가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방법론을 사용하여 독자를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는 작업이다. 이 글을 마치기 전에 필자가 호주 박사과정 중 어느 교수로부터 들은 창조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만이 창조가 아니라, 벽돌 더미에서 벽돌 두 개를 골라 이들의 위치를 바꾸는 것도 창조라 할 수 있다.” |